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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디지털 군중의 감성 코드’ IT







<그림> 디지털 군중의 집단 창작


정보기기와 통신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의견을 주고 받는 디지털 군중이 부상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합리적이지만 하나의 주장이나 사건에 크게 동조하는 감성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무엇에 열광하고, 무엇에 분노하는가? 디지털 군중의 감성 코드를 살펴보면서 디지털 군중의 특성과 의미를 이해해 보자.

디지털 군중이 온다

1895년.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 일어난 지 한 세기가 지난 근대의 끝자락에서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인 구스타프 르봉은 ‘군중의 시대’를 말했다. 소수 엘리트가 신념과 가치 체계를 만드는 시대가 끝나고 군중에 의해 제안된 신념과 가치체계가 사회를 지배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대중의 질서에 익숙해졌을 뿐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군중을 맞이하고 있다. 정보 기기와 실시간 통신을 활용하는 군중이다. 엄청난 양의지식과 정보를 생산해 내며, 소식과 생각을 실시간으로 주고 받으며 여론을 만든다. 이들은 바로 디지털 군중이다.

디지털 군중의 정보력과 행동력은 엄청나다. 월드컵과 총선은 디지털 군중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디지털 군중의 입소문은 매체 광고를 하지 않은 책을 단번에 베스트셀러에 올려버리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군중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SNS 마케팅, 소셜 미디어 마케팅과 같은 용어에서 보여지듯, 많은 기업들이 디지털군중과 소통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분산과 동조의 양면성

디지털 군중에 대해 이해해야 할 것 중 하나는 이들이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실 동질적인 집단이 될 수가 없다. 디지털광장은 너무 많은 사람이 모인, 무한대로 넓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광장에 모인 디지털 군중은 관심사와 학연과 같은 카테고리로 구분되어 상호작용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동질적이긴 힘들다.

또한, 이들은 문자로 소통한다. 대체로 논리적인 소통이 일어난다는 의미다. 더구나 물리적으로 떨어진 공간에 존재하기 때문에 다수의 주장을 수용하게 만드는 군중심리적 압박감이 적다. 누가 뭐라 하건 동의하지 않을 때는 근거를 대며 반박할 수 있다.

때문에 디지털 공간에서 의견의 차이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A를 말하면 A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반응하는 방식도 여러가지이다. 말하는 이가 있으면 동조하는 이와 반대하는 이가 있다. 동조하지만 침묵하는 이가 있고, 반대하나 침묵하는 이도 있겠다. 냉소하는 이도 있다. 이러한 다양성을 디지털 군중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때문에 특정 집단의 튀는 행동을 두고 디지털 군중의 성격을 정의하는 것은 잘못이다. 디지털 군중은 생각하는 군중이며, 토론하는 군중이다. 이들은 모여 있으되, 사실상 분산된 소집합의 상위 집합이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합리성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동조하는 심리가 없다면, 그것 역시사실이 아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관심사에 몰두해 있다가, 가끔씩 하나의 주장이나 사건에 동조하곤 한다. 이들을 동조하게 만드는 ‘코드’가 디지털 네이티브를 디지털 군중으로 만드는 핵심 동력인 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이들을 모으는가? 무엇이 이들을 동조하게 만드는 것일까? 디지털 군중과 소통하고자 한다면, 이들이 동조하는 감성 코드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표> 디지털 군중의 관심사


디지털 군중의 감성 코드

● 음모론과 협력 추리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첫 번째 성인 세대의 출생 시점은 1977년부터라고 한다. 즉 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냈다는 것이다. 1990년대의 코드 중 하나는 바로 음모론이다. 냉전 종식과 함께, 이데올로기에 가려졌던 관점들과 진실이 봇물처럼 쏟아졌기 때문이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케네디의 암살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회, 정치적 사건이나, 교과서에서 배웠던 내용 중 상당수 역시 조작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성인이 된 세대가, 바로 이들 세대다. X파일이나 매트릭스, 신세기 에반게리온처럼 이들 정서깊숙이 자리한 문화 컨텐츠의 기저에도 음모론이 있다. 디지털 군중은 음모론과 함께 자란 세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모론적 사고는 다양한 형태의 기록이 존재하고, 이것을 쉽게 검색할 수 있는 디지털 환경을 만나 협력 추리라는 놀이로 확장된다. 연인 관계를 부정하거나 학력 위조를 숨기는 연예인은 이들의 수사망에 포착된다. 부인할 수 없는 단서를 찾아내기에 열을 올리고, 군중들은 ‘매의 눈’에 감탄하며, 이 증거들을 공유한다. 함께 찾은 단서의 의미를 결합하여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는 것도 군중 스스로다. 이 전체의 과정이 디지털 군중이 하나의 주제에 호기심을 갖게 하는 자극제로 작동하는 것이다.

● 집단 창작의 즐거움

디지털 군중이 즐기는 또 하나의 유희는 바로 집단 창작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2008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빠삐놈을 들 수 있다.

빠삐놈은 빠삐코와 놈놈놈을 결합한 말로서, 영화 ‘놈놈놈’의 배경 음악과 ‘빠삐코’라는 빙과 CM 송이 유사하다고 생각한 네티즌 한 명이 두 노래를 리믹스한 음악 클립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2시간 후, 새로운 요소가 추가된 패러디가 나왔다. 이 때부터 네티즌들은 당시 유행하는 노래와 CM송을 결합하여 다양한 버전의 빠삐놈을 만들기 시작했다. 집단 창작이라는 새로운 놀이의 포문을 연 것이다.

빠삐놈 열풍은 게임 음악 프로듀서이기도 한 박진배씨가 대표적인 합성물을 모두 결합한 완결판을 제작하면서 정점에 올랐다. 이 B급 마스터피스에 디지털 군중은 열광했다. 출시된 지20년이 지난 빠삐코의 판매량은 그 해 40%나 증가했고, 과거 CF가 재방되기 시작했다. 원 광고음악을 만든 작곡가는 2008년을 빛낸 엔터테이너로 선정되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박진배씨가 완결판을 만드는데 들인 시간이 단 2시간 이었다는 것이다. 아이디어와 구성 요소가 나와있는 상황에서 ‘가볍게’, ‘재미삼아’ 해 본 작업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집단 창작의 마력이다. 개인의 작은 노력이 합쳐져서 놀라운 결과물이 창조되는 것에 디지털 군중은 희열을 느낀다.

최근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대화라는 UCC(<그림 1> 참조)가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역시도 집단 창작의 산물이다. 세 장의 사진과 말풍선이 달려있는 공통 포맷을 기반으로, 누구든지 아이디어를 보탤 수 있다. 아이디어가 축적될수록 창작물의 가치가 올라가고, 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음은 물론이다.

● 배설된 감정

얼마 전 나이지리아전에서 실수를 저지른 축구선수 부인의 미니홈피가 악플에 시달린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었다. 무분별한 악플과 무책임한 공격성은 디지털 군중이 가진 가장 추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 현상에도 한 가지 흥미로운 감성코드가 숨어 있다.

불륜과 복수, 비상식적인 대화가 판을 치는 TV 드라마를 막장이라 욕하면서도 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눈살이 찌푸려지는 한편, 시원하기도 하다. 바로 감정의 배설이라는 기능을 해주기 때문이다.

디지털 공간은 현실 공간에서 표현할 수없는 생각과 언행이 분출되는 곳이다. 현실에서 억제된 자아가 표현되는 것이다. 하수구에서 역한 냄새가 난다 해도, 그것을 없앨 수 없는 것처럼, 디지털 공간에서의 감정 배설 역시억제된 현실에 지친 군중의 마음을 위로하는 기능적 측면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감정의 배설 역시, 디지털 공간에서는 놀이가 된다. 독특한 문화로 잘 알려진 인터넷까페인 디시인사이드에서는 어떤 사건이 나면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한다. 사건과 연관된 이름을 가진 갤러리(커뮤니티)에 무의미한 글을 자꾸 올려서 서버를 마비시키는 것이다. 이들은 이것을 ‘갤러리를 턴다’라고 하는데, 지진이났을 때 탤런트 지진희 갤러리를 털거나,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이과인 선수가 골을 넣자, 이과인(이과생)이 활동하는 수학 갤러리를 터는 식이다. 디시인사이드의 회원들은 이러한 활동을 ‘짓궂지만 악의없는 장난’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이들이 공유하는 유머 코드로서, 화제가 되는 동시에 동질감을 확인하는 의식(Ritual)이다.

이러한 코드를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따라 ‘레벨’이 나뉘어지기도 한다. 아고라에는 ‘지수엄마’라는 회원이 있는데, 이 회원은 남편과 시어머니에 대한 불만의 글을 주로 올린다. 그런데 막상 내용을 보면 진짜 문제는 글쓴이 본인에게 있다. 문장은 조악하고 맞춤법은 다 틀려있다. 글을 읽는 사람들은 글쓴이를 욕하거나 사고의 수준에 개탄하지만 진짜 고수들은 지수엄마를 우리 사회의 허영과 패륜을 풍자하는 상징적 인물로 받 아 들인다. 가 상성(Virtuality)은 디지털 공간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지수엄마는 가공 인물로서 배설된 감정의 덩어리인 셈이다. 비난을 감당하지 못하고 활동을 접은 지수엄마가 돌아오게 해달라는 청원도 사실은 디지털 군중이 즐기는 유머의 일부분이다.

● 선(善)한 힘에 대한 믿음

지난 한 주간 한글 트위터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모았던 게시물을 보자. 잃어버린 카메라 속의 메모리카드를 돌려준다면 사례로 카메라를주겠다는 내용이다. 메모리카드 속에 첫 아이의 출생 사진과 동영상이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기발한 제안에 대한 탄복은 지금 아이가 중환자실에 있다는 딱한 사정에 이르면 연민으로 승화된다. 온두라스에 감금되어 있는 한국인 소식, 실종된 여대생, 유서를 써놓고 실종된 지인의 아버지와 같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안타까운 사연들은 한글 트위터의 단골 소재이다(<표 1> 참조).

디지털 군중은 인간애, 정의, 애국심, 가족애와 같은 우리의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정서에 대단히 민감하다. 이것이 관심사가 된 배경에는 공감의 힘이 있지만, 여기에 군중의 힘이 더해지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은 디지털 군중의 소통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든다.

이처럼 디지털 군중은 타인의 아픈 사정을 널리 알리고, 돕는 선한 이웃이 되려 한다. 아고라나 디시인사이드와 같이 완전 익명의 공간이 과격성을 띠는 것과 달리, 제한적이나 마실명성을 가진 트위터에서 이러한 선함이 두드러진다는 점도 주목해 보자. 기술과 함께 디지털 군중도 진화함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한다면, 지나친 낙관주의일까?

● 아이콘, 투사(投射)된 영웅

군중에게 영웅이 있다면, 디지털 군중에게는 아이콘이 있다. 아이콘은 영웅과는 다르다. 완벽한 인격체가 아니라, 군중에 속한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이 투사(投射)되어 있는 불완전한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군중은 영웅을 리더로 추종하지만, 디지털 군중에게 아이콘은 농담의 소재인 동시에 호감의 대상이다.

트위터의 아이콘은 역시 스티브 잡스다. 애플과 관련된 기사는 언제나 트위터 게시물 중 상위에 링크된다. 그러나 트위터의 군중이 스티브 잡스를 막연히 숭배하는 것은 아니다.이들은 스티브 잡스가 독선적이고, 음흉하며, 사기꾼 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신제품을 발표하면서 ‘어메이징’ ‘언빌리버블’ ‘엑설런트’ ‘그레이트’ ‘고져스’를 반복하는 스티브 잡스의 과장된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편집한 동영상이 큰 인기를 얻었던 것이 단적인 예이다. 흥미로운 것은 자신만만하면서도 고집센, 잘난척쟁이 스티브 잡스의 모습이 트위터유저들의 일면과 묘하게 닮아있다는 점이다.

최근 야구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새로운 아이콘은 오리갑이다. 오리갑은 오리탈을 쓰고 경기장을 찾는 LG트윈스 야구단의 팬이다. 빠지지 않고 잠실구장을 찾는 근면성, 뒷사람의 시야를 가릴 것을 염려해 의자가 아닌 바닥에 앉는 배려심,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에 한 번도 화내지 않는 매너 덕분에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오리갑은 LG트윈스 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폭염속에 20kg이 넘는 오리탈을 쓰고, 두 손을 모은 채 LG트윈스의 승리를 기도하는 오리갑의 모습은 안타 하나에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하는 팬들 스스로의 모습인 것이다.

오리갑 명칭의 유래도 재미있다. 오리갑(甲)은 오리신(神)을 의미한다. 어쩌다 갑과 신이 동의어가 되었는가? 야구팬들은 이종범 선수를 신이라 부르는데, 어떤 팬이 신(神)의 한자 표기를 신(申)으로 잘못 표기하자, 또 다른팬은 이것을 갑(甲)이라 잘못 읽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이 사건이 웃음의 소재가 되면서 이들사이에서 갑과 신은 동의어가 된 것이다.

이들은 실수를 즐거워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흔히 디지털 군중이 독선적이라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굳이 숨기려하지 않는다. 낯뜨거운 실수도 폭소 한 번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암호와 아이콘으로 만들어 즐기는 것 역시, 새로운 세대다운 개방적 감성코드이다.

디지털 군중의 역린(逆鱗)

아무리 길이 잘 든 용이라도, 거꾸로 선 비늘을 건드리면 주인을 죽인다는 한비자의 고사에서 유래된 역린은 절대 아는 척해서는 안 되는 왕의 깊은 심중이나 콤플렉스를 말한다. 디지털군중에게도 역린이 있다. 디지털 군중을 자극하고, 화나게 하는 코드들은 무엇일까?

● 얕보기

디지털 군중은 그들이 외소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군중성에 대해서는 존중받고 싶어한다. 유명 아이돌 그룹인 2PM은 멤버 한명을 제명하는 건으로 논란이 불거지자 팬들을 초청하여 간담회를 열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었다. 간담회에 참석한 팬들 중 일부가 안티팬으로 돌변한 것이다. ‘나를 좋아한다면 내 생각에 따르라’는 태도에 이들은 반발했으며, 간담회 녹음 파일을 인터넷에 올렸다. 이파일은 급속히 유포되며 비난의 목소리도 커졌다. 팬은 스타를 좋아하는 개인일 지 몰라도 ‘팬들’은 스타와 대등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들의 자의식은 강하다.

제품의 결함을 지적하는 의견이 비전문가의 견해로 치부되면, 디지털 군중은 진짜 전문가를 동원한다. 디지털 군중 속에 존재하는 ‘고수’나 ‘능력자’들의 지적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힘을 얕보는 것은 심각한 실수다. 시시비비를 떠나 군중에 대한 태도가 더 큰 이슈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정색하기

디지털 공간은 감정이 배설되는 공간이기에, 여기서 보여지는 모습과 현실의 모습은 다른 경우가 많다. 젊은 배우의 팬 사이트에서 야한농담을 주고 받는 과격한 누나 팬의 실제 모습은 다소곳하고 조신한 주부들이다. 그러기에 디지털 공간에서 생긴 트러블을 현실 공간에가져오는 것은 일종의 반칙이다. 명백한 인신공격을 문제 삼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에서는 어느 정도 용인될수 있는 표현의 수위에 대해 법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디지털 광장에서 여론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또한 사라지기 일쑤다. 한 의견이 두드러진다해도, 모두가 거기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한번 웃고 지나갈 일, 놔두면 잊혀질 일에 대해 정색하여 문제를 키우는 것은 이들이 흔히 하는 표현처럼, ‘웃자고 시작한 일에 죽자고 덤비는것’이다. 이것은 몰이해의 소산으로 치부된다.

● 불의와 기만

정색하기와는 반대로,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정서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잘못에 대해 디지털 군중은 크게 분노한다. 노인에 대한 무례, 부자들의 오만한 언행, 양심에 맞지 않는 행위, 대기업의 횡포는 디지털 군중을 자극하는 단골 소재다. 대기업이 화제가 되면, 언론 플레이는 디지털 군중의 음모론적 세계관과 맞물려 자연스레 같이 등장한다. 이들은 기사의 내용은 물론이고, 언론의 논조와 흐름도 탐지하는 똑똑한 군중이다. 디지털 군중의 여론을 만드려고 하는 것은, 그들을 무시하는것 만큼 위험할 수 있다.

● 강요된 질서

디지털 공간은 시끄럽고 혼란스럽다. 때로는 진저리가 날만큼 원색적이기도 하고, 익숙한 논쟁과 싸움이 반복된다. 하지만 디지털 광장의 불문율 중 하나는 ‘못 보겠으면 눈 감는것’이다. 혼란 속에서도 디지털 군중은 인위적질서를 거부한다.

악플러로 골머리를 앓던 디시인사이드의해결책은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둠으로써 선의의 디지털 군중과 분리하는 것이었다. (이 공간의 이름은 막장 갤러리다.) 트위터나 아고라에서 악의적인 게시물이나 댓글에 대한 대책은 무반응이다. 과격한 언행으로 주목 받고자하는 악플러의 습성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 군중은 자발적 질서를 만들어 가려할 뿐, 제도와 훈계는 거부한다.

소통의 키워드는 참(眞)의 가치

이러한 코드들이 기업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일차적으로, 감성 코드를 자극하고, 역린은 조심하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 광고 속에 의도적으로 모호한 요소를 끼워 넣거나, 집단창작에 사용될 수 있는 소재를 만드는 것, 디지털 군중에게 각인될 수 있는 아이콘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겠다. 아무리 작은 의견이라 해도 경외심에 가까운 존중을 표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디지털 군중의 속성을 가장 잘 이해한 기업인으로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사장을 들 수있다. 지난 6월 손사장은 소프트뱅크의 30년비전을 발표했는데, 이를 위해 작년 말부터 트위터 군중의 의견을 구했다. 집단 창작의 활동에 초대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소프트뱅크의 30년 비전은 결국 사람의 행복이었다. 보편적이며 선한 가치를 표방한 것이다. 그리고 발표 말미에 손정의 사장은 돌아가신 할머니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보였다. 손사장이 ‘모든 인간이 함께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말하는 동영상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같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지점에서 손사장은 디지털 군중의 아이콘이 되기 부족함이 없다. 적극적 트위터 유저로 알려진 손사장은 스스로 디지털 군중의 일원이 되어 이들과 동일한 언어로 소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내지 말자. 디지털 군중의 본질을 한번 더 생각해 보자. 협력 추리와 집단 창작을 통해 이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왜 이들은 그들 스스로의 추한 면, 부족한 면을 숨기려 하지 않을까? 이들은 왜 선한 얼굴을 하는데 관심을 갖는 것일까?

이들이 진짜 찾고 싶어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은 참(眞),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사건의 진실, 사람의 진심, 인간의 진정, 그리고 인생의 진리 같은. 디지털 군중은 만능에 가까운 정보력과 지성, 조직력을 갖는다. 참된 것을 알아보는 힘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기에 디지털 군중과 소통하기 위해 기업은 스스로 진실해져야 한다. 제품을 사는 소비자가 아니라 행복을 찾고자 하는 인간으로서 그들을 바라보고, 진짜 가치를 주고, 진심으로 소통해야한다. 진짜가 되면, 디지털 군중은 그것을 알아본다. [손민선 책임연구원]

(서울=뉴스와이어)


*위의 자료는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의 주요 내용 중 일부 입니다. 언론보도 참고자료로만 사용가능.
출처: LG경제연구원
[뉴스와이어 www.newswire.co.kr201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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